촐라체 [6,440]/Mountaineer

그들이 추구했던 정신은......[ER 한상섭씀]

뭉게구름™ 2011. 1. 28. 20:58

<그들이 추구했던 정신은>

 

계보(系譜)란 사전적으로 가문(家門) 및 혈통(血統)이 계승되어 온 연속성(連續性) 또는 그 기록을

말하는데
,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집안의 혈통이나 집안의 역사를 적은 책 또는 혈연관계나 학풍, 사조따위의 순서를

나타낸 기록이다
.


계보를 잇는다고 할 때 이 말에서 묻어나는 향기는 두 가지다.


첫 째는 당대를 이끌어간 대표성, 둘 째는 이전세대와의 연속성이다.

 


 

 

대한민국 농구의 역사중에서 명슈터의 계보는 신동파로 시작해서 슛도사 이충희, 컴퓨터슈터 김현준 그리고 람보슈터

문경은으로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배구의 역사에서 거포의 계보는 강만수로 시작해 장윤창, 하종화, 이상열, 그리고 김세진, 신진식으로

이어지다가 현재 박준범이 그 계보를 잇고 있다
.


그 계보는 좀 더 세부적으로 우완 거포와 좌완 거포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야구에서 강속구 투수의 계보는 남우식으로 시작해 황규봉, 최동원 등으로 이어지다가 선동열에서 꽃을 피우고 박찬호,
 
조성민, 임선동 등으로 이어진다
.


물론 현재 그 계보를 잇고 있는 선수는 좌완 최고의 듀오 류현진김광현이고 벌써 그 뒤를 한화에 입단한 유창식이

준비를 하고 있다
.


 

우리나라 산악스키의 계보는 전담선생이 시조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거벽등반의 계보는 누가 만들기 시작했을까?


필자의 얄팎한 지식으로는 재미산악인 주영선배를 한국거벽등반의 시조라고 알고 있다.


주영선배는 요세미티 거지시절 쌓아올린 공력을 바탕으로 한국인으론 처음으로 엘캡을 등정했고, 그 계보를 정승권

이었으며(정승권교장 본인의 거벽등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주영선배를 언급한 바 있음
)


다시 그 흐름은 최승철, 김형진에게로 이어지게 되고, 그 들의 혼이 탈레이사가르에서 불꽃처럼 산화한 후에 전용학,

김세준
등이 그 계보를 잇고 있다.



 

이렇듯 계보란 당대를 이끌어가는 대표성뿐 아니라, 이전 세대와의 연속성도 가져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의 흐름과 방향은 최승철, 김형진의 삶의 궤적과 동일했다.

 

그 들이 마지막까지 추구하고 갈구했던 정신과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1.jpg

1-1.jpg

2.jpg

3.jpg


 


언젠가 ER人이 아닌 제3자가 보는 시각의 글이 우리 홈피에 올라와 한동안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다.

 

표현의 방식이 어떻든 간에 바깥에서 보는 ER등산학교 그리고 ER人은 좀 헝그리하고, 삐딱하고, 제도권에 기웃거리지

않는 아웃사이더같은 색깔로 보인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그 표현이 별로 기분나쁘지 않았던건 나뿐만이 아니었는데, 아웃사이더가 내포하고 있는 기질은 결국 모범생과는 대척

점에 있는
 속성이었기에 그랬던 건 아닐까.

 

우리들은 내면 속에는 모두 범생이 아닌 ‘나쁜남자’의 인자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 그리고 우리 ER人들은 어떤 유전인자(DNA)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을까?

 

 

도전은 과정 자체로 위대하다. 


그래서 우리는 스포츠에 열광하고,
 또한 그 속에 들어있는 페어플레이(Fair Play)정신을 ‘스포츠 정신’이라 부른다.

 

하물며 알피니즘, 등반이라는 용어가 내포한 '도전' 과정 그 자체로 위대하고 또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남들과는 다른 선택 속에 살거나, 평범함을 거부하고 파문을 일으키거나


도전적이고 도발적이고 평범한 일상을 마다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풍운아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남들은 벌써 은퇴했을 불혹이 가까운 나이에 국내 프로구단의 제의를 거절하고 마이너리그에 머물면서 계속
 
메이저리그라는 큰 무대에 도전했던 야구선수 최향남 같은 선수말이다
.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기꺼이 택했던 사람,


그래서 바람같다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사람.

 

플루타크 영웅전이래 세기의 영웅들을 키운건 8할이 시련이듯이, 그 두 사람 앞에는 숙명같은 시련과 도전이 있었다.

 

 

 최승철, 김형진은 등반에 관한 한 어느 누구 못지않은 외골수적인 기질을 가졌었다.

 

사람들은 그 것을 두고 등반열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미쳤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 들이 그 짧은
 
기간동안 개척한 많은 새로운 등반루트들…갱기좌벽, 적벽, 장군봉, 소토왕골, 전위적인 등반 기록들, 탈레이사가르를

비롯한 무모하다 할만한 첨단의 거벽등반 계획들을 떠올린다면, 외골수이건, 열정이건, 미친 클라이머이건 전위를 꿈

꾸었던 것은 분명했던 모양이다. 

 

그 두 사람은 그런 시련과 도전의 시기속에서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를 만들었다.

 

쉽게 말하자면, 최승철, 김형진 1997년 그레이트 트랑고에 ‘코리아 환타지’라는 신루트를 개척하고 돌아와

(LSCK원정대) 거벽등반 인구의 저변 확대와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그리고 함께 거벽을 찾을 동지들을 찾기위해 그 해


10
월 익스트림 라이더 등산학교를 열게 된 것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그 들은 A4용지에 ‘제1기 익스트림라이더 인공등반 교육생 모집’이라고 써서 그 들의 암장에

붙였고, 잘 알고 친숙한 장비점 창문마다 붙여놓았다.


그 이전에도 개별적이고 간헐적인 거벽등반 교육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거벽등반을 위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가지고 이루어진
 
곳은 익스트림 라이더가 처음이라 할 수 있다.


8.jpg

9.jpg

10.jpg


 

 

미국 프로야구 최고의 명문팀 뉴욕양키스의 유니폼은 세로로 줄이 새겨진 일명 ‘핀스트라이프’이다.

 

미국 프로야구선수들은 이 ‘핀스트라이프’유니폼을 입기를 갈망한다.


단순한 줄무늬 유니폼이 아닌 미국 최고 명문팀을 상징하는 대표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박찬호처럼 연봉이 깍이거나, 알렉스 로드리게스 같은 불세출의 스타가 자신의 주포지션인 유격수를 포기하고,

3
루수로 변경되는 모험을 감수하고라도 그 옷을 입기를 갈망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국내의 경우 예를들면 이승엽이나 배영수 같은 선수들은 ‘내 몸에는 파란 피가 흐른다’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자신이

속한 팀 삼성라이온즈의 대표 색상인 파란색, 즉 그 파란색 유니폼을 아끼고 상징하는 또 다른 말이다
.




4.jpg

5.jpg

6.jpg

6-1.jpg

7.jpg


 

갱기폭 좌벽. 나는 그 앞에서 두 사람의 얼굴을 곧 찾아냈다.

이 벽에는 이미 위대한 전설이 되어버린 사내들의 꿈과 절망이 서려있다.

 

최승철, 김형진.

 

그네들은 그리 멀지 않은 기억으로부터 왔다.


그들은 설악산의 푸른 안개와 푸른 산빛, 일렁이는 침묵의 고요를 헤치며 그들이 잠들어 있는 인도 탈레이사가르

(6,904m)의 눈덮인 하얀 바위벽을 넘어 내게로 왔다.

 

그네들은 전위(前衛)를 꿈꾸었다. 본디 전위는 불온한 것이어서 고독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 전위는 첨예한 칼끝에 서는 것과 같아서 회색이란 있을 수 없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기로에서 단 하나의 선택만 가능할 뿐이다. 따라서 전위는 늘 불안정하고, 고독하다.

 

전위는 본질적으로 평범한 것을 거부한다. 그들은 시인 김수영의 시구처럼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

전위적 클라이머는 생과 사의 미묘한 경계를 오가기 때문에 그들 생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와 항상 대결해야 한다
.

따라서 그들의 삶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살아남은 자들이 아직도 그들을 추억하는 것은 그들이 현대 알피니즘의 정수리에서 너무도 짧고 빠르게 꽃잎처럼 스러

졌기 때문이다.


현대 알피니즘은 ‘좀더 새롭고, 좀더 어렵고, 좀더 힘들게’로 집약할 수 있다.

 

현대 알피니즘의 비조(鼻祖)라 일컬어지는 알버트 프레드릭 머메리가 살았던 시기는 영국 알파인 클럽의 선배들이

걸어서 등정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봉우리들을 초등한 시기였다
.

머메리보다 약간 먼저 등반을 시작해 1878년 ‘그랑 드류’를 초등한 클린턴 토마스 덴트는 “알파인 클럽의 옛 멤버들은

우리에게 이런 바위투성이의 침봉들만 남겨 놓았다.

 

그들은 알맹이는 다 가져가고 바위들만 남겨놓았다”고 회고록에 적고 있다.

머메리는 거칠고 험한 바위벽을 올라야만 하는 시대적 숙명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


그는 처음 마터호른을 본 순간, 가슴 속 밑바닥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그 무엇을 느꼈다.

1879
. 그는 가이드 알렉산더 부르게너와 함께 당시 가장 어렵다고 하는 마터호른 즈무트리지를 초등한 이래 수많은

봉우리와 루트 초등을 이루어냈다.

 

1895. 인류 최초로 8000m급의 낭가파르밧(8125m)으로 진출한 그는 이른바 ‘운명의 산’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장렬한 최후였다.

 

최승철 김형진 신상만씨가 다시 새롭게 조명되는 이유는 엄홍길씨와 박영석씨가 자이안트 14좌를 등정함으로써,

14
좌에 대한 이른바 ‘통과의례‘가 끝났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룬 성과는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다
.

하지만 우리 앞길에는 머메리의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걸어 올라가는 시대는 끝나고 본격적인 거벽등반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그 선두에 그들이 거기 서있었다
.


(
김기섭 2001년 ‘설악산 갱기폭좌벽’ 등반기 중에서 )


 

 

그렇다. 최승철,김형진 그 들은 한국 거벽등반의 시대를 앞서간 풍운아들이었다.

 

그래서 늘 바람같았던, 바람과 함께 했던 그 들의 맑고 뜨겁고 전위적인 피는 현재 김세준,전용학에게 면면히 흘러

들아와있다.

 

비단 그 피가 흐르고 통하고 있는 몸이 김세준과 전용학뿐이랴만은, 적자(赤字)를 찾자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

해서인데,
김세준, 전용학을 초대강사의 적통을 잇는 적자(適者)라고 표현하지 않고, 초심을 잃지 않는 순수하게

ER人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에서 ‘赤字’라고 쓴 이유이다.

 

☞赤字之心 ; 갓난아이와 같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결한 마음

 


 

 

자신은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동계초등하거나 로체 남벽을 처음으로 모두 돌파했을 때에도 산에서 내려와 강연 요청

한번 들어온 적 없고, 생활에서 달라진 것도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

다나베는 지금까지 일본 내에서 스포츠 분야와 관련한 상을 몇 번 받았지만 메달이 전부라고 덧붙였다. 지난 산행 중

산장에서 다나베를 알아본 주인은 2천 엔짜리 와인 한병을 선물로 주었었다
.


다나베는 “나는 조금 유명하지만, 산꾼들 사이에서일 뿐”이라고 말했었다.

14봉을 전부 오른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내 목표는 처음부터 14봉이 아니었다
.


만일 그게 나의 목표였다면 메스너 이후 고작 스물 몇 번째 등정자가 됐을 것이기 때문”이라며

“현재 12개를 오른 다케우치가 조만간 일본 첫 14봉 등정자가 될 테지만, 그건 그가 택한 삶의 방식일 뿐 이후 어떤 변화

도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마운틴 紙 ‘오사무 다나베 ‘산이 나를 가난케 하리라’ 중에서  -이영준-)

 



11.jpg

빙벽1.jpg

빙벽2.jpg

빙벽3.jpg

빙벽4.jpg



"
극한의 도전자들, 그들은 아직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의 개척자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


그리고 그들의 정신은 언제나 변함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고 신상만 최승철 김형진 탈레이사가르 원정대.


(
갱기좌벽 동판)

 

 

 

 

우리는 왜 이렇게 험난한 벽을 오르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 멀리 떠나와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을 지도 모른다
.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우리의 오름짓은

내재돼 있는 유전자의 명령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


운명이 그러하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또 올라갈 수밖에….


(
김기섭 ‘갱기좌벽등반기’ 중)

 



평범함을 거부하는 치열하고 전위적인 정신


이것이야말로 익스트림라이더가 지향하는 ER人의 정신이 아닐까

 


 

- 몹시 추운 겨울 그 들이 문득 생각나고 그리워서  게슈타포 씀 -

글쓴이: ER 한상섭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