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봉 [1,732]/Jirisan Nomad
[스크랩] 지리산 이야기...(펌)
뭉게구름™
2006. 5. 27. 21:44
촛대봉(1704m).
.............동
...........촛대봉 ........도장골~~~~~↘...........................남
...........세석 산장...음양샘~~~~~~~길상사~~~~거림
...........영신봉....한벗샘~~~~.삼신봉.↗. .........청학동.
.............서
천왕봉-제석봉-장터목-연하봉-촛대봉-세석-영신봉-
칠선봉 -선비샘-덕평봉 -벽소령-형제봉-연하천-
화개재-삼도봉-노루목-임걸령-노고단-성삼재.
'지리산 능선 상 많은 봉우리와 고개마루들.'
촛대봉은 지리산 주능선에서 자연 훼손이 가장 심각.
그러나, 지리산에서 가장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한 곳.
촛대봉 암봉들은 등산로 울타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촛대봉은 세석평전에서 천왕봉 방향의 봉우리.'
세석평전을 사이에 두고 영신봉을 마주 바라보는 위치.
천왕봉 웅장함과 발 아래 도장골 풍경이 조화를 이룬 곳.
촛대봉 아래 40분 거리, 그곳은 지리산 나물 최대 군락지.
이곳 등산로가 산꾼들에게 알려진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
내대 거림마을 사람들이 나물과 약초를 뜯으려 다녔던 길,
1950년대에는 지리산 빨치산이 환자후송병원의 환자 비트
'아직 자연환경이 살아 숨쉬고 인적이 드문 등산로.'
밀금폭포 아래 위 용소, 와룡폭포, 들돌골, 시루봉골 촛대봉골
아직 사람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비경들을 품은 촛대봉.
지리산에 아직 이런 코스가 남아 있다는 것은 산꾼들에게 축복.
거림마을 들머리 매표소에서 오른쪽 200 m 숲속의 길상사.
도장골에서 유일한 시설물이고 그 이외엔 희미한 등산로들.
촛대봉 계곡과 연하봉 계곡이 만나는 바로 아래에 와룡폭포.
이곳까지 오기 전 500 m 쯤에서 시루봉으로 오르는 왼쪽길.
시루봉골 옆을 지나 촛대봉 능선까지 오르는 데도 1시간 30분
세석산장에서 촛대봉 샘은 20분 거리, 이정표는 어디에도 없다.
촛대봉 정상에 서면 먼 산등성이들이 파도치듯 춤춘다.
발 아래 사막처럼 펼쳐진 세석평전 따라 흘러내린 암릉.
점점이 촛대처럼 솟은 바위봉우리들 틈새로 붉게 핀 철쭉.
광활함일까? 황량함일까?
기이함일까? 절묘한 조화일까?
촛대봉에서 영신봉으로 이어진 애틋한 전설은 지리산의 백미.
세석평전과 아울러 음양샘에 얽힌 비화가 가슴 뭉클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촛대봉의 전설> 지리산이 품고 있는 신비함의 절정.
'과연, 촛대봉은 어떤 전설과 신비를 간직한 곳일까?'
<촛대봉 독립 산행코스>
의신 - 대성골 - 큰세개골 - 영신대 - 세석산장 - 촛대봉.
거림 - 도장골 - 촛대샘 - 촛대봉 - 세석산장1박 - 음양수 - 거림,
<밤 11시 50분 서울역 출발 - 진주행 무궁화 호 기차- 구례구 하차.>
.................촛대봉의 전설.............................
촛대봉에는 '음양샘의 비밀'에 관한 전설이 있다.
지리산에 최초로 들어와 살았다는, '전설 속 연인'.
호야(乎也)와 영신( 일명 : 연진아씨 라고도 부른다).
두 사람은 대성골에서 사랑의 보금자리를 펴고 정착.
그들은 지리산의 대자연 속에서 인간적인 자유를 찾는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했던 사랑은 너무도 짧게 끝나 버린다.
'결국, 촛대봉의 전설로 남은 애틋한 사랑.'
지금부터 그 애틋한 촛대봉의 전설 속으로 들어가보자.
호야와 영신은 산나물과 과일을 따먹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없는 한 가지 아쉬움이 따랐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 호야가 집에 없을 때
영신에게 찾아온 곰이 알려준 음양샘의 비밀.
"세석평원에 아이를 낳게 해주는 신비의 샘이 있어요."
영신은 남편과 상의할 틈도 없이
음양샘으로 달려가 샘물을 마신다.
그러나, 곰과 사이가 나빴던 호랑이
그 사실을 산신령에게 고해 바친다.
산신령은 음양수의 비밀이
인간에게 누설된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하며 곰은 토굴에 갇우고
호랑이는 '백수의 왕'으로 만든다.
한편, 음양수 샘물을 훔쳐 마신 영신에겐 무거운 형벌.
그날부터 영신은 세석평전에서 혼자서 철쭉밭을 가꾼다.
세석 철쭉꽃이 그녀 손끝에서 흐른 피로 붉게 물들 때까지.
그리고, 영신은 밤마다 촛대봉에 촛불을 켜고 잘못을 빌었다.
산신령에게 잘못을 빌다가 영신이 돌로 변한 곳이 '촛대봉 정상'
그곳에는 한 여인이 기도하듯 무릎 끓고 앉아 있는 모습의 바위.
촛대 모양 암봉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촛대봉.
촛대처럼 뾰죽한 암봉들이 기이한 형상으로 서있다.
촛대봉 고개마루 길가 암봉이 영신이 돌로 변한 곳.
.............................................................................
촛대는 중국 진나라 당시부터 유래된 밤을 밝히는 불.
진시황은 촛불로 아방궁을 밝히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하여, 촛불로 신방을 밝히는 풍습이 오늘날까지 성행한다.
한반도는 고대사회로부터 고래잡이가 성행했던 지역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촛불의 유래는 진나라와 차이가 없을 듯.
하여, 촛대봉 이름으로 전설의 시대적인 배경을 찾긴 어렵다.
촛불은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사다리를 상징한다.
촛불은 지상에 사는 사람의 뜻을 하늘에 전하는 매개체
이 때 촛불은 신단수, 솟대, 탑 등과 같은 상징성을 지닌다.
'화촉을 밝힌다'는 말은 부부 합궁을 뜻한다.
촛불의 흰 빛은 신랑 신부의 순결을 상징한다.
촛대는 남근의 상징이며 촛불은 여성을 의미한다.
촛대봉의 전설을 보면, 영신은 촛불의 상징인 듯 싶다.
.............................................................
.............................................................
영신이 무릎 꿇고 앉아 잘못을 비는 것은 석고대죄.
석고대죄는 거적 깔고 앉아 벌을 기다리는 궁중법도.
순결을 지켜야 할 신분의 여인이 사랑에 빠진 죄일까?
......................................................................
......................................................................
'산신령의 노여움을 샀던 음양샘 전설의 여 주인공.'
마치,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 같기도 하다.
영신이 음양샘을 마시기 전까지 대성골은 에덴 동산.
영신과 호야 두 사람 만이 행복하게 살았던 지상낙원.
그러나, 영신이 음양샘을 마신 후 그 낙원은 사라진다.
마치 에덴동산 선악과를 아담 이브가 따먹고 난 후처럼..
'죽음보다 혹독한 형벌을 받는 영신과 호야.'
고해성사를 하는 여인의 모습과 같은 촛대봉.
그곳에서 석고대죄를 하던 끝에 돌로 변한 모습.
죽은 후에도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의 형벌'.
'영신이 죄를 빌다가 돌이 되었다는 촛대봉.'
호야가 죽은 영신을 찾아헤메다 돌로 변한 영신봉.
세석평전을 사이에 두고 촛대봉과 마주보이는 위치.
호야가 죽은 곳이지만 영신의 이름을 본따..영신봉.
'멀리 떨어져 마주보며 그리움만 삭이는 연인.'
.......................촛대봉의 형태..............................
촛대봉은 넓은 구릉에 올망졸망 뾰족뽀족 선 바위 군락.
멀리서 보면 작아 보여도 가까이 다가서면, 큰 바위 숲.
그곳 큰 바위 암봉들은 목숨을 위협할 만큼 높고 험하다.
그곳 큰 바위 숲은 등산로에서 벗어나 있어 접근이 어렵다.
길따라 울타리로 막혀 있어 그곳 큰 바위 숲은 잘 보존된 듯.
고산지대의 희귀식물 자생지는 한번 망가지면 회생이 어렵다.
일반 등산로는 인파에 짓밟히고 패여 사막과도 같은 분위기.
촛대봉 정상 팻말 옆 바위에 잔돌로 쌓은 탑들이 눈길을 끈다.
그곳 위에 앉은 모습으로 돌이 된 영신의 슬픔을 달래주려는 듯..
촛대봉은 영신봉을 마주보며 세석을 품은 곳.
광활한 세석평전 양끝에서 마주보는 연인인듯.
처녀의 순결한 피로 물들인 듯한 세석평전 철쭉꽃.
촛대처럼 날카로운 바위들이 연이어 있는 암봉 숲.
마치, 촛물이 흘러내린 듯하여 유래된 이름, 촛대봉.
.........................................................................
봉우리마다 날카로운 바위 표면이 살을 찢는 촛대봉.
겉보기엔 부드러워 보여도 칼날을 품은 듯 한 암봉들.
온몸의 피부는 물론 여린 속살까지도 사정없이 파고든다.
아득한 태고에는 바닷가의 갯바위였을 것 같다는 느낌.
그것은 광활한 세석평전에 깔린 잔돌들도 역시 마찬가지.
지리산은 6천 5백만년 전에 화산 폭팔로 형성되었단다.
3천만년간 용광로처럼 용암이 끓다가 식은 후 빙하시대.
한반도는 1억 2천만년전 공룡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곳.
한반도는 공룡 서식처일 만큼 열대 우림지역.
세석의 갯바위는 태고에 이곳이 바다였던 흔적.
오랜 세월 지각변동으로 바다에서 솟아오른 고원.
칠,팔천년전 빙하가 녹아 세석평전의 표면을 깍아내린 듯.
그곳에 남은 갯바위는 오랜 세월 비바람에 부서져 흩어진 듯.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환경의 변화일까?
세석의 잔돌들은 오랜 풍화작용을 거쳤어도 날카롭다.
영신은 세석평전 철쭉을 가꾸며 열 손가락이 찢겼을 듯.
밤이면, 촛대봉 날카로운 바위가 속살까지 파고들었을 듯.
촛대봉은 잠시 앉아 머물기에도 견디기 힘들만큼 괴로운 곳.
음양샘을 마신 죄에 비해, 산신령 노여움은 지나치다는 느낌.
'영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했던 형벌이 아니었을까?'
촛대봉에서 내려다보면 시야 가득 펼쳐진 세석평전.
영신의 피에 물들어 붉은 듯 세석평전 가득한 철쭉꽃.
온 몸에 피를 다 쏟고 속죄의 기도 끝에 돌이 된, 영신.
영신의 슬프고도 애달픈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촛대봉.
아직도, 촛대봉 높은 곳에서 삼신봉을 내려다 보는 영신.
영신은 돌이 되어서도 아직도 그곳에 무릎꿇고 앉아있다.
당장 달려가면, 만날 거리에서 돌이 된 연인 '영신과 호야'.
'이 보다 잔인한 형벌이 어디에 또 있을까? '
...................................................
...................................................
'촛대봉의 전설은 불교 교리에서 유래된 것 아닐까?'
지옥은 저주받은 영혼들이 형벌을 받으며 거주하는 곳.
환생할 때까지 생전 악행 만큼 마귀들에게 고통받는 곳.
망각의 국을 마시고 윤회의 수레에 오르기 전 머무는 곳.
망각의 국을 마시면 지옥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잊게된다.
원시 종교에서 죽은 영혼의 종착지는 어두운 지하세계
외딴 섬 또는 지하세계의 깊은 심연(그리스 타르타로스)
기독교의 지옥은 유대교 개념이 밑바탕인 '저주의 장소.'
마귀와 그 휘하의 악한 천사들이 지배하는 불타는 지역
원래, 지옥의 개념은 불교에서 시작되어 유래된 듯 하다.
촛대봉은 불교에서의 지옥을 연상하게 하는 곳이다.
촛대봉은 바늘방석과 뜨거운 지옥 불구덩이를 상징.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
8열 지옥
<등활지옥>은 몽둥이로 얻어맞고 살이 찟겨
죽음에 이르렀다가도 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나
똑 같은 고통을 되풀이해야만 하는 지옥을 말한다.
<흑승지옥>은 검정 오랏줄이 살을 갈갈이 찢는 지옥.
<중합지옥>은 인간의 모든 고통을 한꺼번에 겪는 지옥.
<규환지옥>은 고통에 못이겨 짐승처럼 울부짖게 되는 지옥.
<대규환지옥>은 규환지옥 고통보다 강도가 한층 더 심한 지옥.
<초열지옥>은 불길에 휩싸여 살이 타는 고통을 겪는 지옥.
<대초열지옥>은 초열지옥에 비해 한층 견디기 뜨거운 지옥.
<무간지옥>은 한 순간도 멈춤없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 지옥.
8한 지옥.
<알부다지옥>은 너무 추워 온몸에 수포가 퍼져 고통겪는 지옥.
<나랄부타지옥>은 온 몸의 수포가 터지면서 더욱 고통겪는 지옥.
<알타타지옥>은 살을 에는 추위에 떨며 "알타타"를 외쳐대는 지옥.
<하바바지옥>은 더 심한 추위에 못견뎌 "하바바"를 외쳐대는 지옥.
<호호바지옥>은 "후후바"라 겨우 외쳐댈 만큼 추위에 시달리는 지옥.
<올발라지옥>는 혹한에 살이 벗겨져, 청련화(범어)처럼 보이는 지옥.
<발특마지옥>은 혹한에 살이 찢겨져, 마치 홍련화처럼 보이는 지옥.
<마가발특마지옥>은 혹한에 온 몸이 찢겨, 큰 홍련화처럼 보이는 지옥.
8열 지옥은 칼날이 촘촘하게 박힌 길을 걷는 지옥.
칼날 잎사귀 나무 숲속을 걸어가야 하는 지옥이다.
이 숲에서 나뭇잎이 떨어지면 살점이 잘려 나간다.
이 때 숲 속 점박이 개들이 그 살점을 주워 먹는다.
그리고, 큰 쇠못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 숲속의 지옥.
이 지옥의 옥졸들을 피해 도망다니면 살점이 찢긴다.
더구나, 나무 위에는 쇠부리가 달린 새들이 살고 있어,
사람의 눈, 심장, 간을 쪼아 먹어 숨 돌릴 틈조차 없다.
아직도 지옥의 길은 멀고도 험하며 고통스럽다.
펄펄 끓는 물에 삶아지며 살과 뼈가 녹는 지옥
끓는 물에서 나오지못하게 무서운 옥졸들이 감시.
.................................................................................
'자비를 가르치는 불교 교리에 비해 무서운 지옥.'
불교의 교리는 인간의 성욕을 금기로 여긴다.
특히, 여성의 애욕은 전생의 죄악으로 여긴다.
하여,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은 비구보다 많다.
촛대봉의 전설은 불교의 교리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남자인 호야보다는 여자인 영신에게 유독 가혹한 벌.
그러나, 전설 내용은 영신과 호야는 수도자가 아니다.
따라서, 애욕으로 인한 형벌로서는 해석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영신이 잔인한 형벌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세석평전과 영신봉까지 살펴보아야 그 의문점이 풀릴 듯.
.............................................................
.............................................................
세석평전의 철쭉꽃은 여전히 해마다 피어난다.
마치 돌로 변한 영신의 피맺힌 한에 붉게 물든 듯.
촛대봉의 주변은 인파로 훼손될 만큼 풍경 좋은 곳.
그곳의 능선 등산로는 지리산 전체가 보이는.. 전망대.
동쪽은 가까운 듯 멀리 천왕봉, 서쪽은 아스라히 반야봉.
남쪽은 도장골, 청래골, 북쪽은 한신계곡, 하동바위 능선.
인적 드문 먼 계곡 아래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길가엔 구상나무, 가문비 나무, 침엽수들의 억센 둥치.
모진 풍파에 견디느라 부대낀 듯 한결 같이 키가 작다.
'분재와도 같은 주능선 길가 또는 바위틈 나무들.'
수천년 세월을 그 자리에서 태어나 스러지고, 다시 태어난 그들.
'나무마다, 풀 한포기마다..아름답고도 신비 가득한 '꽃말의 전설'.
마치, 자연 속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유래 및 전설을 속삭이는 듯.
오랜 세월동안 모진 풍파를 겪으며 영신과 함께 아픔을 나눈 듯.
촛대봉을 닮은 듯.. 뾰죽한 모양과 침엽을 갖고 있는 구상나무.
'88 올림픽 나무'로 선정되었던 우리나라 고유의 향토수종이다.
지리산 능선마다 볼 수가 있고, 높이 18m까지 자라는 상록교목.
마치, 이곳의 구상나무 숲은.. 촛대봉 유래와 전설을 말해주는 듯.
세석산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넓은 세석평전이 한눈에 보이는 곳.
세석평전은 그 둘레가 12㎞이고 약 30만 평 면적의 넓이이다.
세석평전(細石平田)은 일본식 표기이므로 세석고원이 좋을 듯.
촛대봉의 전설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을 연상하게 한다.
손끝찢는 세석의 잔돌. 핏빛 처녀의 순결, 촛대봉 형벌.
왜인 조상이 한반도에 거주할 당시에 남긴 전설이 아닐까?
한반도 민족이나 일본 민족은 그 뿌리가 하나인 '몽골리안'
일본은 칼 잘쓰는 기마족, 우리 민족은 활을 잘쏘는 유목민.
세석평전은 고대국가에서부터 말 달리고 칼 쓰는 심신 수련터.
지금과 같은 세석의 모습은 약 100 년전 산불 탓이라고도 한다.
15 세기 이곳을 찾은 김종직, 김일손의 기행문에도 이곳은 평원.
1983년에 처음 건립된 세석산장은 66 평방미터 60 여명 수용 규모.
이 산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故 허우천 씨가 살았던 옛 산장 터.
세석평전 중앙에 있었지만 지반이 튼튼하지 못해 철거된 바 있다.
산이 좋아 홀로 산속에 들어와 살았던 우천 허만수(宇天 許萬壽).
'지리산신령'으로 더 알려졌던 그의 보금자리는 쓰러져가던 움막.
흘러가는 흰구름, 눈보라, 비바람 속 야생화를 벗삼아 살아갔던 그.
22에 결혼한 부인을 홀로 두고 31세에 산속으로 들어가 살았던 그.
산을 잊어달라고 애원하던 부인을 뿌리치고 영영 혼자서 살다 간 그
산을 사랑했기에 산에 들어와 산을 가꾸며 산에 오르는 이의 길잡이.
어림잡아 7 만명의 등산객을 안내하고 수많은 인명을 구조했던 그 .
조난자를 찾아 헤매기 20년..조난자 시신을 찾아 집으로 돌려 보낸 일.
부상자를 안전하게 옮겨 치료한 일, 지리산 일대의 고아들을 보살핀 일.
지리산의 살아있는 전설이었고 사라진 이후에도 전설.
추모비는 법천골 입구에서 법천교 다리 지나.. 칼바위 전.
세석에서 철쭉꽃처럼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그.
'1976년 6월 홀연히 자취를 감춘 그는 어디로 사라진걸까?'
1972년부터 매년 철쭉이 만발하는 시기에 진주산악회 주최로 '철쭉제'
이곳은 천왕봉, 한신계곡, 도장골, 거림골, 삼신봉, 청학동의 길목이다.
지리산 종주를 하는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즐겨 찾는 산장이기도 하다.
.................................................................................
.................................................................................
주소 :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 산 325
1995 년에 면적(653㎡) 수용인원 240 명
일박에 사용료는 7,000원이고, 담요는 1,000원
현재 주능선 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장이 들어서 있는 곳.
지리산에서 가장 많은 등산객들이 즐겨 이용하는 산장이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양지바른 위치'에 있다는 것이..'장점'.
2층 창문으로 세석평전의 남사면의 설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산장.
장터목 산장과 벽소령 산장을 관장하는 분소장 외 5명 직원들이 관리.
2층 칸막이가 된 가족실은 5∼8 명의 단체가족일 경우에 한해 빌려준다.
자가발전 난방시설이 있고 밤 10시에 소등, 산장 아래 50m 지점에 샘물.
매점에는 초코파이, 비스킷, 건전지 라면 가스연료 부식을 판매한다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직영하는 산장이라 술은 팔지 않는다.
사전 예약없이 이곳을 찾는 인파가 몰려들면 발 딛을 틈도 없다.
하여, 산장 건물 아래.. 지상 1m도 안되는 틈새 안까지, 비박 인파.
인파가 몰릴때면 산장의 복도와 계단 아래 구석까지도 새우잠 인파.
예약 없이 산장에서 일박하려면,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50세 이상 여성은 1순위>이고 <60세 이상 남자는 2 순위>.
<50세 이상 남자는 3 순위>이고 그 이외에는 같은 조건이다.
제44조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설립) 국립공원을 보전하고
자원에 대한 조사·연구, 시설의 설치·관리, 자연공원의 청소,
공원 이용에 관한 지도·홍보와 그 밖의...' 대통령령이 정하는..'
대통령 긴급명령 악천후 일기예보...(폭설 태풍 호우)
이 때 제 44조 법령을 어기면 50 만원의 벌칙금이 고지.
관리공단직원들 만류를 어기고 야간산행을 강행할 경우.
벌금을 내더라도 몸만 무사하면 천만다행한 경우가 많다.
벽소령산장에서 세석산장까지는 '마의 구간'이기 때문이다.
세석산장으로 이어지는 모든 등산로는 조난사고가 빈번한 곳.
거림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짧지만 그곳도 길이 끊기면.. 위험.
가벼운 마음으로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특히 유념해야 한다.
..............................................................................................
..............................................................................................
세석산장에서 취사할 때에, 독초와 뱀을 조심해야 한다.
세석평전 등산로 주변 개울가에서 가장 흔한 <동의나물>....노란 꽃
미나리아재비과인 동의나물은 나물이란 이름의 독성식물.
특히, 산나물로 꼽는 곰취와 구별이 쉽지 않다는 사실.
곰취인줄 잘못 알고 먹고는 식중독 걸리는 경우가 많다.
하여, 동의나물과 곰취를 구분방법을 알아야 할 것 같다.
꽃이 지면 동의나물과 곰취는 구분이 힘들다.
<곰취>는 잎에 털이 있고 테두리에.. 톱니 무늬.
<동의나물>은 잎에 털이 없고 테두리가 밋밋하다.
<곰취>는 잎자루에 골 따라 양쪽에 자색 무늬
<동의나물>은 잎자루 골 따라 무늬가 없다는 점.
<동의나물의 꽃>은 사실 꽃잎이 아니고,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이는 것 뿐이이란 점.
'하얀꽃이 세석평전에 저렇게 많이 피어 있을까?' <꽃황새냉이>.
양귀비목 십자화과 쌍떡잎식물. 두해살이풀, 냉이꽃 닮은 큰 4 꽃잎.
꽃은 긴 꽃대에 달린 꽃이 아래에서 위로 차례대로 한여름까지 핀다.
산소결핍 상태로 인해 급하게 일어나는 호흡곤란에 대한 진정효과.
중추신경 억제재 수면제 원료로 쓰였으나 요즘은 몰핀으로 대신한다.
이곳에서 흔한 <쥐오줌풀꽃>은 진정 진경제, 담배의 가공 향로.
연분홍꽃이 모여 핀 꽃술 위로 벌 나비가 모여들 만큼 꿀이 많다.
예전에 쥐오줌 풀은 약재 원료로 쓰였지만, 현재는 사용을 않는다.
...............................................................................................
...............................................................................................
독초가 많은 초원은 맹독성 독사 종류의 서식처.
특히, 꽃뱀은 철쭉꽃으로부터 독을 공급받는 독사.
정해진 등산로에서 이탈하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다.
세석평전
<지리산 제 7 경 - 세석평전의 철쭉. >
해발 (1,500m) 경남 함양군 하동면에 위치.
지리산 주능선에서 가장 넓고 경사 완만한 평원.
5~6월 철쭉 꽃 장관이 아름다운 '남녘 최대의 고원'.
마치, 티벳 고원을 연상하게 하는 세석평전.
티벳고원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황하강 발원지
우리나라 민족에게는 마음의 고향이자 영혼의 고향.
티벳 유목민 후손답게 이곳에서 말을 달린 옛 화랑들.
세석은 이름 그대로 잔돌이 많고 30리에 걸친 대평전.
처녀의 핏빛 투명한 속살처럼, 분홍 色 고운 철쭉 바다.
절정기에는 산악인들의 물결로 발디딜 틈 없는 세석평전.......3만9천여㎡
세석은 촛대봉(1,704m)과 영신봉(1,652m) 사이의 고산평원.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 하여 불리어 지게 된 이름..세석평전
해마다 5월 말~ 6월초 철쭉이 만개할 때이면 인파로.. 인산인해
능선을 따라, 봄 여름 가을 계절 따라, 야생화가 다투어 피고 진다.
'이곳이 고산 초원과 철쭉 군락지대로 바뀐 것은 언제부터 일까?'
대성골을 불바다로 만든 남부군 토벌 당시, 불탄 역사가 있던 곳.
신라시대에는 노고단과 함께 '화랑들의 심신수련장'이었던 곳.
구한말 동학 농민군의 전장, 일제 징용 징병 거부자들의 피난처,
빨치산 남부군들의 근거지이자, 6.25 전후 화전민들의 보금자리.
세석에서는 72년부터 매년 6월 첫째 주말에 철쭉제를 열어왔다.
진주 산악회가 주최했던 산상 축제는 88년까지 5년간 중단 했다.
공식행사는 중단한 동안에는 진주 산악회에서 산신제를 모셔 왔다.
철쭉제가 중단된 5년 동안, 세석의 철쭉밭은 거의 원상복구가 되었다.
89년 6월 3일 18회 철쭉제는 5년만에 부활되었고,
산상축제도 자연보호 경진대회로 성격이 바뀌었다.
<지리산 제 모습 찾기운동> 및 <미스 철쭉 선발대회>
'시인 김석(金汐)의 표현을 인용하면..'
세석 계곡 가득히 피어있는 철쭉꽃,
그 사이사이로 울고 있는 뻐꾹새 소리,
훈풍이 꽃 사이로 지날 때마다
꽃들의 환상적이고 화사한 흔들림,
그것은 남녘 나라 눈매 고운
처녀들의 완숙한 꿈의 잔치.
.................................................
.................................................
철쭉은 처녀의 순결을 상징하는 꽃.
철쭉꽃의 꽃말은 '사랑의 기쁨'이다.
...................................................
...................................................
.......................................
세석평전이 품은 수수께끼.
.......................................
세석평전은 철쭉 군락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세석은 철쭉 군락지 이전에 어떤 형태의 평원이었을까?
신라 화랑의 심신수련장으로는 메꾸어지지 않는 긴 공백.
광활한 평전에 숲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하다.
세석평전은 옛날부터 줄곧 초원의 모습으로서 지속되어 왔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가 아닐까?' 궁금하다.
'세석에 마약 원료인 독초가 자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 약제는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된다.
양귀비에서 축출한 아편류는 취음제 용도로 나쁘게 쓰인다.
아편 대마초 류는 환각상태를 일으켜 나쁜 마음이 들게 한다.
그런 습관성 마약들은 건강에 악영향을 끼쳐 폐인이 되게 한다.
청소년들이 호기심으로 본드나 대마초 흡입행위는 큰 사회문제.
'혹시 이곳은 역사의 한 시점에서 아편 텃밭이 아니었을까?'
아편은 취음재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효과가 있는 약재이다.
꽃에서 축출한 향수 또는 사향노루에서 축출한 사향도 취음제.
<샤넬 no 5.> 향수는 '보이지 않는 잠옷'인 취음제 성격의 향수.
'관능미의 대명사' 마리린 몬로가 잠옷 대신에 애용했다고 한다.
요즘은 우리나라 야생화 옥잠화에서 축출한 향수의 인기가 높다.
4계절 구분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옥잠화 꽃의 향기는 으뜸이다.
순결을 상징하는 듯 하얀 꽃에서 풍기는 그윽하면서 매혹적인 향기.
<사향>은 동물성 냄새를 지닌 사향노루의 분비물로 만든 취음제.
사향의 효과는 얼음 위에 대나무 잎 잠자리를 깔 만큼 열렬할 정도.
신라인들은 사향을 패용하고 서기 5백년 이전 아랍지역에 수출했다.
신라인들이 사향을 복용하는 방법을 터득한 시기는 서기 792년 이전.
그 당시 지리산 일대는 사향노루, 곰, 수달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는 서기 5백년 전후 아랍에 사양 말고도 다른 상품을 수출했을 듯.
국제 무역을 하는 큰배에 사양만 싣고 망망대해를 항해할 수 없기 때문.
'서기 5백년 전후 아랍지역을 오가던 무역선은 어떤 상품을 취급했을까?'
'세석평전이 광활한 초원지대로 존재한 사실 자체가 미스테리 아닐까?'
일단, 수수께끼의 베일을 풀려면, 의문점부터 품는 것이 순서일 듯 싶다.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 세석평전은 아편을 만들었던 텃밭이라 보여진다.
우선 아편에 관한 역사를 추적하면, 그 수수께끼 실마리가 풀어질 듯 하다.
기원 전 그리스에서 사용한 마약은 1~ 12세기까지 <소아시아 산물>.
서기 5백년 이전에 아랍에 사향을 수출했다면, 해상왕국인 '금관가야'.
금관을 불교권역의 나라에 수출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
금관 이외에도 금불상, 청동기, 무기, 농기구, 장식품, 옥구슬.
<가야> 국호는 '아랍권 석가모니가 탄생한 나라'에서 본딴 이름.
그렇다면, <마약, 금관, 가야>를 추적하면, 수수께끼가 풀릴 듯.
금관가야는 선진 청동기 문화는 물론 철기문화가 꽃핀 나라이다.
철광석으로 철을 주조하다 보면, 구리 동 금이 부수적으로 생산.
.............................................................
.............................................................
' 우선, 아편의 역사부터 알아보자.
..............................................................
..............................................................
.......
아편.
........
아편은 양귀비 꽃에서 축출한다.
양귀비는 세기적인 미녀의 대명사.
당나라 황제 현종을 미치게 한 여인.
하여, 아편 원료인 꽃 이름이 <양귀비>.
우선 양귀비가 어떤 여인인지 알아보자.
.............양귀비.............................
양귀비는 오늘날까지 동양의 미인상.
우리나라 산부인과 의사들에게도 No 1.
'양귀비 수술'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이상형.
남심 사로잡으려는 여성이 하는 예쁜이 수술.
양귀비는 보이지 않는 곳의 매력도 빼어난 듯.
영화배우 김지미를 우리나라 양귀비로 꼽는다.
젊은 여성을 젖혀두고 그녀를 꼽는 것은 이례적.
아직도 그녀는 여성다운 매력이 넘친다는 뜻일까?
고대 중국 남성들의 가는 발목과 작은 발에 대한 맹신.
비교적 키가 작고 통통한 여성은 남성을 사로잡는 매력.
옛날 상궁 나인을 선발할 때 미인을 선출하는 판단 기준.
양귀비는 그당시 중국에서 미인의 기준을 모두 갖춘 여성.
‘한번 웃으면 백가지 교태가 쏟아지고
살결이 희고 몸매가 풍만하고 요염하다.'
신구당서(新舊唐書) 정사(正史)의 기록.
양귀비 외모에 관한 특징을 서술한 내용.
사천성 촉 중원 출생 그녀는 서국형(西國型) 매력.
명랑한 성격, 음악을 좋아했고 춤은 일품이었단다.
본명은 양옥환. 719년 의부(義父)따라 長安으로 이주,
735년 17세에 현종 황제의 황자 수왕(壽王)의 비(妃).
740년 양옥환이 22세때 현종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되고
현종은 그녀를 절에 보내 여승으로 만들고 태진으로 개명
훗날 태진궁(太眞宮)을 지어 태진을 그곳으로 불러 들였다.
이때 현종은 60세였고 양옥환은 22세였다.
5년이 지나 745년에 후궁 중 가장 높은 귀비.
현종이 그녀를 여승으로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며느리를 빼앗아 자신의 후궁으로 삼으려는 계략.
아버지가 아들의 부인을 탐낼 만큼 예뻤다는 양귀비.
현종은 상처의 슬픔에서 벗어나 양귀비에게 빠져든다.
그후 현종은 그녀의 매력에 10년간 사로잡힌 채
온천궁으로 세워진 화청궁에서 정사를 망각한다.
그러나, 그동안 어양의 절도사 안록산이 양귀비의 양자가 되고,
양귀비 친척인 양국충이 재상이 되자 두사람 간에 갈등이 생긴다.
755년 11월 안록산이 20만 대군을 앞세워 장안을 향해 반란(反亂).
9년간 내란으로 나라는 쑥대밭이 되고 756년 안록산이 낙양을 점령
양국충 일족은 몰살 당하고 양귀비는 38세에 비단 폭에 목메어 자살.
안록산을 추종하는 반란군이 양귀비를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중국 서안 화청지의 양귀비 동상.'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눈 화청지.
오늘날 미인의 기준과는 거리가 먼 듯..
각종 문헌을 보면 통통한 동양적인 미인.
양귀비 동상과 초상화 속에는 6등신 몸매.
삼백(三白)과 삼홍(三紅)의 미인, 양귀비
작은 키에 10센티도 채 안 된다는 작은 발.
양귀비 미모의 최대 비밀은 피부에 있단다.
하얀 이마, 코, 턱을 지칭하는 삼백(三白)
붉은 입술, 뺨, 손톱의 삼홍(三紅)의 미인.
희고 깨끗한 피부에 어린 소녀 같은 이미지
양귀비는 피부를 가꾸는데 많은 노력을 했다.
배꽃, 복숭아꽃, 모과꽃, 사과꽃, 배견화, 홍련화, 살구꽃
7가지 꽃잎을 소주에 담근 후 맑게 여과시킨 화장수를 사용
복숭아꽃이나 살구꽃의 탄닌 성분은 소염, 지혈작용으로 얼굴 잡티 방지
여기에 진정작용을 하는 사과와 피지조절을 해주는 살구꽃까지 사용한 듯.
양귀비와 현종의 온천욕 데이트 역시 그녀의 피부미용에 한몫 단단히 한듯.
화청지는 서안에서 25㎞정도 떨어진 여산(驪山)산록에 있는 온천.
양귀비가 목욕했다는 해상탕(海常湯)은 지금도 섭씨 43도 온천물
목욕하면 기분이 상쾌해지며, 관절염과 피부병에도 효험이 있단다.
양귀비는 황후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고,
세 자매까지 한국(韓國)·괵국(國)·진국부인.
현종은 양귀비의 3 자매도 부인으로 거느렸다.
양귀비는 남방 특산의 여지 과일을 좋아했단다.
현종은 웅대한 지략가이며 음악에 조예 깊은 당대 최고의 풍류객
양귀비는 노래와 춤도 뛰어났고 비파의 명수라 현종을 사로잡았다.
양귀비는 풍만하면서도 잘록한 허리로 유명했다는 서구형의 미인형.
38 나이로 숨질 무렵에는 통통한 몸매였던 것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
현종은 나당연합군 즈음에, 신라의 미녀를 조공 받았던 인물.
한반도 역사상 최초 미인선발 대회는 통일신라에서 이뤄졌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한 뒷 배경에는 미스 신라도 한몫 한 듯.
그 뒷배경이 없었다면, 과연 당나라가 신라에 군사를 파견했을까?
그 신라의 미인들보다 현종의 이성을 마비시킨 양귀비의 매력.
60 노인 현종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애지중지 했다는 양귀비.
'과연, 현종은 양귀비의 어떤 매력에 빠진걸까?'
양귀비의 두 발이 한손에 잡힐 만큼 작고 예뻤다는 기록.
양귀비는 어린 소녀처럼 몸매가 작고 허리가 잘록한 미인.
현종은 소녀 같은 외모의 양귀비 매력에 흠뻑 빠져든 듯.
하여, 힘없는 노인이라도 그 매력에 취해 힘이 솟았던 모양.
현종은 8세기 인물이고 중국에 아편이 도입된 시기는 11세기.
아편의 원료를 양귀비 꽃에 비유한 것은 무려 300년 후 이야기.
아편의 독성이 그녀 같다고 하여 그 원료를 양귀비꽃이라 명명.
아편에 취하면 양귀비를 품에 안은 듯 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아편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씌여왔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아편 (阿片, opium).........................
모르핀 등을 포함한 대표적인 마약의 한 종류이다.
양귀비 꽃이 지고 10일 후 삭과가 채 익지 않았을 때,
특수한 칼로 세로로 얕게 상처를 내어 배어 나온 유액.
그것이 굳으면 주걱으로 긁어모아 약하게 가열,·말린 것.
이것이 생 아편, 모르핀 함유량을 10% 전후로 조절하면 <아편분말>.
황갈색(암갈색) 특이한 냄새에 강한 쓴 맛을 지닌 것이, <의약용 아편>.
생아편을 물에 녹여 증발시킨 다음에 ·농축시킨 엑기스가 <흡연용 아편>
옛날부터 중국에서는 담뱃대를 사용하여
작은 램프의 불로 발연시켜 흡연을 즐겼다.
아편은 진정,·진경,·진통,·진해,·지사,·최면, 마취 목적으로 사용
惡心·구토·두통·현기증·변비·피부병·혼수 만성중독 등등 부작용.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독성때문에 오래 사용하면 폐인이 된다.
아편은 습관성 만성중독을 일으키므로<마약법>에 의해 사용금지.
양귀비는 지중해 연안 지방이 원산지로 알려졌다.
예전에 어린아이가 보채면 양귀비즙을 먹여 달랬다.
그리스에서는 기원 전부터 마약제로 사용되었고,
1세기에서 12세기까지..소아시아에서 수입했단다.
아편은 아라비아인에 의해 페르시아·인도, 그리고 중국으로 전파.
중국에 양귀비 첫 도입 시기는 당(唐)나라 때 관상용으로 재배되고
'양귀비의 말린 열매 껍질' 앵속각이 약재로 쓰이긴 11세기 북송시대
원나라 때엔 아편이 설사, 만성 기침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아편 흡연풍습은 17세기 청나라 때. 1729년에 아편 흡연 금지령.
아편은 루손섬에서 중국으로 반입(연간 200상자 :1상자= 60㎏)
1757년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인도아편 전매권 장악후 중국수출.
1780년에는 1000상자,
1816년에는 5000상자,
1820년대에는 매년 1만 6877상자
1840∼42년 아편 반입을 금지한 아편전쟁(청나라& 영국).
1850년 난징조약 체결후 5만 6839상자,
1880년 9만 6839상자로 늘어났다.
1906년 10 개년 계획으로 양귀비 재배금지 및 아편흡연을 단속,
1909년 상하이에서 영국과 국제회의를 열어 아편수입을 중단 노력.
한편, 한국에서 앵속자·앵속각 등이 약용으로 알려진 것은 조선시대.
아편흡연이 주목된 것은 <오주연문장전산고>중<아편연변증설>부터.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에 청군이 주둔하며 아편 해독이 널리 퍼졌다.
1905년 아편흡연 수입·제조·판매 금지규정.
1912년에 조선형사령>이 제정되었다.
1919년 <아편취체령>과 시행규칙을 제정
아편제조 허가자 外 양귀비 재배 엄금,
1957년 아편제조 양귀비 재배 엄금, 마약법 제정
오늘날, 세계 최대의 마약 생산지는 아프가니스탄
마약 생산이 전쟁과 탈레반 정권의 붕괴로 중단됨
따라서 태국. 미얀마. 라오스 국경, 황금의 삼각지대.
그곳의 양귀비 재배가 점점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
히말라야 산맥 남쪽 기슭에서 흘러내린 메콩강 유역.
미얀마 태국 라오스 3국의 국경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
이곳 황금의 삼각지대는 전통적으로 양귀비 재배 지역.
최근까지 전세계 헤로인의 약 60%을 공급하던 곳이다.
태국 군에 따르면 황금 삼각지의 마약 거래 두목들
고산지대의 소수민족들 통해 본격적인 양귀비 재배
그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고 방콕 포스트가 9일 보도.
현재 마약에 관한 국제조약에 가입을 해야만,
의료용 원료는 국제연합기구에서 할당 받는다.
.................................................................
이 자료를 살펴보면, 중국의 아편 역사는 11세기 이후.
아편은 기원 전에 그리스에서 사용, 소아시아에서 수입.
아편을 그리스에 수출했던 소아시아는 어느 나라 였을까?
그당시 항해술과 무역이 발달했던 해상왕국은 불과 몇몇 나라이다.
그중 삼한과 가락국이 가장 유력한 무역국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조때 거북선을 만든 이순신 장군의 선조 백제도 유력한 해상왕국
아메리카 대륙은 신천지 역사 이전부터 원주민 인디안은 몽골리안.
인디안은 원래 아시아 민족이며 백제와 무역 교류가 있었다는 학설.
인디안 식생활, 아이 업는 풍습, 물동이 이는 풍습이 우리와 비슷하다.
금을 좋아하는 아시아의 유목민들이 아메리카로 넘어간 것은 아닐까?
한반도의 고대국가가 무역상품으로 아편을 취급한 것은 분명한 듯.
그렇다면, 세석평전은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마약 원료를 생산한 곳.
세석평전이 영토였던 <가락국 신라 백제 삼한>시대 어느 한 시점일 듯.
우리나라 고대국가에서 금 가공 기술이 일찌기 발달했던 나라는 가락국.
.......
금관.
.......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성씨는 김(金), 이(李), 박(朴).
그중에서도 김씨 성은 한반도 민족을 대표하는 성씨이다.
금을 가장 좋아하는 민족이 금을 찾아서 한반도로 대이동.
한반도 끝에서 바다가 가로막자 왜까지 건너갔다고도 한다.
청나라의 전신 후금(後金)을 창건한 '누루하치' 황제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 성씨 역시 애신각라(愛新覺羅).
신라를 각별히 사랑하고 생각한다는 뜻이 담긴 말이다.
청나라와 신라 왕족은 족보를 따져보면 그 뿌리가 같다.
발해가 망한 후 북방 거란족이 세운 나라가 요(僚)나라.
만주족이 명나라를 몰아내고서 중원의 패자가 된 금(金).
그 전통을 이어받은 나라 이름이 후금(後金)이다.
금(金)을 잘 다루고 세공을 잘하던 사람들이 김씨.
일본황실 성이 김해 김씨, 김은 김씨가 즐기는 음식.
금은 고대국가 이전부터 국제무역에서 화폐 대용수단.
경주 김씨 조상은 김알지가 이끈 신라 부족.
박혁거세와 석탈해 다음으로 왕족이 된 김씨.
당시 왕은 세습이 아닌 3 종족이 교대로 집권,
결국, 김씨 종족이 왕족을 맡아서 신라를 통치.
동서양을 마구 넘나든 기마족(스키타이족)의 이야기
천마총에서 발굴한 금관(金冠)은 스키타이족의 전형
고구려는 물론 백제와도 다른 카스피해 근처의 금관
최소한 같은 문화뿌리를 가진 민족이 한반도에 정착
만주족의 또 다른 호칭 여진(女眞)족 그 말은 이두문자.
여진은 숙신(肅愼), 조선(朝鮮), 주신(珠申)과 같은 뜻
그 말의 뜻은 '밝은 온누리' = 박달(밝은 들) = 배달.
고대 소아시아, 우랄산맥, 중앙아시아의 스키타이족.
적의 피를 마시고 해골을 기념으로 차고 다닌 기마족.
또 팔 가죽을 벗겨 화살통으로 쓰는 잔인했던 민족이다.
스키타이 기마족 군사들은 가는 곳마다 공포의 대상
스키타이족은 흑해와 소아시아 중앙아시아까지 점령.
그리고, 동쪽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까지 달려간다.
스키타이인은 흑해 북쪽 볼가강 유역에 살던 종족.
이란 또는 아리안이라 부르는 인도 유럽 스키타이인'.
평민의 신장은 평균 164cm, 상류층은 176~ 180cm 정도.
흑해 북안 스키타이족은 코카서스나 쿠반처럼 유럽인 특징
동쪽 사르마티아 지역에서는 몽골리안의 특징이 첨가되는데
이들은 기원 전 6세기 경에는 서쪽으로 유럽까지 진출한다.
하여, 금을 잘 다루는 민족 간 해상무역 또는 교역이 성행.
......................................................
......................................................
한반도 고대국가에서 청동기문화 꽃을 피웠던 가락국.
최초로 금관을 만든 나라라 하여 고려에서는 금관가야.
금관과 가야를 합친 금관가야는 고려 때 가락국의 국호.
'금관가야는 이조나 고려의 사학자가 편의상 붙인 국호.'
<금관 가야> 이름 속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을까?
'통일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번쩍거리는 금관에 숨겨진 비밀.'
금관에 나무 나뭇잎 꽃 열매 사슴 뿔 새 모양들이 새겨진 장식.
1천 5백년 전 한반도에 갑자기 등장한 금관의 장식을 살펴보자.
금관을 쓰고 허리띠에 금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의상을 걸친 왕.
<푸른 숲>출판사에서 펴낸 `금관의 비밀`.
저자는 고고학자인 '김병모' 교수(한양대)
30년에 걸친 현장답사와 고증으로 금관의 상징성을 풀어낸다.
금관의 모양새는 역사의 비밀을 풀어 줄 수 있는 암호와도 같다.
신라 금관은 그 가치나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연구는 미미했었다.
'1997년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금관에 설명 조차 없을 만큼.'
금관의 옥구슬(반달 또는 맹수 송곳니 모양) = 나무열매를 상징.
숲과 나무를 숭배하는 기마 민족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한 장식구.
신라 금관의 나무열매 장식물은 생명의 탄생과 자손의 번영을 상징.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알타이의 유물과 민속품은 신라 유물과 공통점.
'타이가 지역의 끝없는 하얀 숲' 그 자작나무로 만든 신라시대의 유물.
신라 금관은 알타이 지역의 사금으로 만든 것으로 김병모 교수는 추정.
신라시대 금관 6개 중 순금인 것은 무열왕능(김춘추왕)에서 출토된 것 뿐.
신라에 합병된 가락국이 신라왕실을 장악한 후에야 순금 금관을 만든 증거.
가락국은 금을 숭배하는 우랄 알타이 족의 공통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나라.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 = 황금빛 금알에서 태어난 난생신화.'
아랍, 중국을 거쳐 한반도까지 들어와 금을 찾는 민족들이 이룩한 가락국 .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할 때, 황금을 찾아 서부로 이동한 것과 유사.
가락국이 무역상품으로 황금을 취급했다면, 사향 아편까지도 취급했을 듯.
.........................................................
.........................................................
통일신라시대 서민들의 옷차림은 대체로 삼국시대와 비슷하다.
다만, 친당 정책의 영향으로 귀족계급 옷차림 만 당나라 스타일.
저고리는 직령교임제, 좁은 소매 섶에 대를 두르고 천을 덧대었다.
바지는 치마보다 활동이 편하도록 가랑이가 따로 떨어진 형태였다.
모자(관모)는 삼국시대 옷차림인 <책, 절풍, 조우관>을 그대로 유지.
금관은 중국의 것에 비해 <구술을 꿰어 만든 장식품> 세공미가 앞섰다.
왕의 동작에 따라 움직이는 동적인 미와 멈췄을 때 정적인 미가 돋보인다.
여기까지는 김병모 교수이 30년간 연구한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자료이다.
가락국은 옷을 만드는데 필요한 비단은 물론 장식용 패물도 취급을 한 듯.
.......
가야.
.......
<가야>라는 나라의 유래를 백과사전에서 찾아보자.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흥미로운 점이 보인다.
<금관가야 창건신화>와 <가야>는 유사한 점이 많다.
현재, 가야는 인도 북동부 비하르주(州) 파트나 지역의 종교도시.
인구 29만 천명(1991). 힌두교 성지링 <비슈누 파드 사원>이 있다,
불교의 성지로 유명한 이곳은 석가(釋迦)가 수행하고 해탈했던 곳.
즉, 석가모니가 부처가 된 곳 부다가야는 가야의 남쪽 10㎞ 지점.
주위 바위산엔 불교유적이 많고, 금강좌 자리엔 높이 54m의 큰 탑.
그 탑은 지금도 세계 각지로부터 순례객이 끊이지 않고 있고 관광지.
역사 기록을 보면, 가락국은 영토보다 금에 집착한 듯 씌여져 있다.
가락국의 조상들은 금을 찾아 민족 대이동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설.
즉, 김(金)씨 성은 금을 찾아 이동한 민족에서 비롯된 성씨라고 한다.
고대국가의 국호나 영토에서 비롯된, 다른 성씨의 유래와는 색다른 설.
한반도는 옛날부터 금이 많이 나오는 곳으로 알려져 왔다.
중앙아시아의 민족들은 대부분 금을 좋아하는 공통적 특성.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김씨 성을 갖고 있는 인구가 가장 많다.
삼한시대 지역인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가 '김씨 성'의 본 고장.
삼한시대 이전부터 변한 진한 지역은 철기문화가 발달한 곳.
금을 좋아하는 김(金)씨 민족이 고대국가 전부터 정착한 곳.
고구려 신라 백제는 농본국가였으므로 영토확장에 주력한 역사.
가락국은 불교국가이고, 교역 중심의 해상왕국이었던 나라이다.
금을 찾아 망망대해를 다닐 만큼 항해술도 발달한 나라인 가락국.
'가락국은 각국왕조를 상대할 만큼, 진귀한 상품만 취급한 듯.'
해상왕국 가락국은 금 청동기 제품과 함께 여러 제품을 취급한 듯.
아편, 사향, 산삼, 한약재, 비단, 귀금속 장식품, 무기, 갑옷, 토기 등등.
그 옛날 각국 왕조를 거래처로 고가품만 취급한 상술이 놀랍다.
일본 황실은 전통적으로 성을 사용하지 않지만, 원래 김해 김씨.
일본은 세계 백금의 70%를 소비할 만큼 금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식품은 우리나라 남해에서 생산되는 '김'이다.
한반도는 고대국가부터 제철 포경업과 무역업이 발달한 해상왕국.
일본과 우리나라는 오늘날 무역 제철 원양어업에서 첨단 선진국가.
세석평전이 초원으로 남아 온 수수께끼는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세석평전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속 베일을 품은 곳.
아울러, 음양샘으로 가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좀 더 알아보자.
음양수.
지리산 종주를 하다보면 음양수를 놓치기 쉽다.
주능선에서 벗어나 남부능선 방향에 있기 때문.
거림 방향에서 올라와야 제일 쉽게 만나는 샘물.
세석평전 직전 고사목지대 양지바른 바위숲.
음양수 위쪽 너른 바위엔 곱게 쌓인 돌 제단.
예전에 화전민들이 십여 가구 쯤 살았던 흔적.
그곳 돌절구가 화전민 마을이었음을 뒷밭침해 준다.
책상만한 바위에 원통형의 구멍을 파서 절구로 이용.
사람이 살았고 농사를 지었다는 구체적인 증거인 셈.
김점분 외12명의 여성 빨치산들이 토벌대에 포위되자
13명 전원이 권총으로 장렬하게 자결했던 곳이 음양수.
이어, 1952.1.17 토벌대와 미군 합동군이 대성골을 공격.
대성리 마을 뒤에 수많은 시신들이 흩어지고
3일 동안 대성골 계곡 일대에는 피가 흘렀다.
음양수는 반란의 역사 격전지였던 곳 중 하나.
'김정분 외 12 여성 빨치산은 왜 자살했을까?'
전쟁 역사 상, 여성 포로는 정복할 공격 목표.
적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한., 심리전.
전쟁 중에는 성윤리가 표류해 강간 겁탈이 급등.
2차 대전 당시 정신대를 피해 절에 숨은 여성들.
6.25 당시 정절을 지키려 산속으로 피신한 처녀들.
정절을 유린 당하느니 죽음을 선택한 당시 유교관념.
수복지 산간 마을마다 "색씨"를 찾던 일부 미군들.
당시 우리나라 여성들은 목숨보다 소중한 정조 관념.
그녀들의 자살은 정절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듯.
'과연, 공산주의를 위해 목숨을 끊었을까?'
단지,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다가 맞이한 최후.
죽음으로서 정절만은 지키려 했던듯 추정된다.
당시 목숨보다도 소중했던 여성들의 정조 관념.
'조상대대로 뿌리깊었던 유교관의 영향인듯.'
이념과 사상을 초월해 마음이 숙연해지는 곳.
그 고귀한 정조 관념 앞에 고개 숙여지는 곳.
그 가엾은 넋들을 기리기 위한 음양수의 돌탑.
음양수에서 대성골까지 수많은 돌탑들.
오늘날 그곳 돌탑들은 무속신앙의 상징.
하여, 철거되었다가 다시 쌓여지길 반복.
큰 바위 아래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음양수.
그 석관수를 자세히 살펴 보면, 놀라운 풍경.
마치, 하리수를 연상하게 할 만큼 고혹적이다.
'남녀 양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음양수.'
큰바위 하나에서 흘러나오는 두 줄기 석관수
큰 바위 앞 웅덩이에 고였다가 다시 흘러간다.
음양수 주변은 양지바르고 따듯해 편안한 휴식처.
들여다보면 볼수록 오묘한 느낌이 드는 음양수.
그 샘물은 주변을 적시며 다시 대지로 스며든다.
마치, 대지 위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듯한 광경.
'하여, 음양수라고 부르는 걸까?'
지리산 주능선과 남부능선이 만나는 곳의 샘물.
남부능선은 대성골과 거림골 사이로 뻗어 내린다.
하여, 세석평전 골짜기 '음'과 남부능선 '양'의 만남.
남부능선은 세석평전의 골짜기를 파고드는 산세이다.
엎어진 골(자빠진 뜰)따라 올라오면 한벗샘이 나온다.
한벗샘 지나 남부능선따라 세석평전 가까이 가면 음양수.
'음양 기운이 합쳐져 하나를 이루는 음양수.'
하여, 음양수를 마시면 아이를 갖일 수 있다는 전설.
특히,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많이 찾아온다.
음양수는 들여다 보면, 볼수록.. 의미심장한 이름이다.
세석산장 남쪽 2 km 아래,
거림으로 가는 길가에 있다.
남부능선 마지막 고비의 갈증을 달래주는 음양수.
이 샘에는 사랑하는 남녀의 슬픈 전설이 담겨있다.
마주보는 <촛대봉>과 <영신봉> 두 이름 유래의 산실.
불교에서 인간으로 태어남은 윤회설에 의한 하늘의 뜻.
하늘의 뜻을 어기고 인간 뜻대로 아기를 갖는 행위는 죄.
그 천기를 누설했다는 전설이 실감나게 느껴지는 '음양샘'.
이곳 샘물을 마시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의 샘.>
그 이유만으로도 은밀히 불임여성들이 찾는 샘이기도 하다.
음양수는 지리산에 있는 옹달샘 중에서 가장 진수를 품은 샘.
이곳에 얽힌 역사적 사실 역시 지리산의 전설 중에서 절정이다.
전설의 실체를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알듯 모를 듯, 미궁 속 신비.
'도대체 <음양수의 전설> 속에 숨겨진 비밀의 실체는 무엇일까?'
.......................<음양수 전설>.................................
아득한 옛날 지리산의 인간은 호야와 영신이란 남녀 뿐.
세석평전에 초막을 짓고 나무 열매를 먹으며 살고 있었다.
원앙처럼 금슬이 좋았던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하루는 호야가 다래를 따러간 사이에 반달곰이 영신에게
음양수 샘물을 마시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영신은 곧바로 음양샘으로 달려가서 음양수 샘물을 마셨다.
그러나 곰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호랑이
그 사실을 지리산 산신령께 고해 바쳤다.
산신령은 천기를 발설한 곰을 토굴에 가두고,
호랑이는 그 공으로 백수의 왕이 되도록 했다.
산신령은 샘물을 몰래 마신 영신에게도 무거운 벌을 내려
철쭉이 빨갛게 물들 때까지 세석평전 철쭉을 가꾸도록 했다.
영신은 낮에는 철쭉을 가꾸고 밤에는 촛대봉 정상에 올라가
촛불을 켜놓고 산신령께 자기의 죄를 빌다가 바위가 되었다.
촛대봉의 앉은 바위는 영신의 몸이 굳어진 모습이라 전해온다.
한편,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영신을 찾아나선 호야.
영신이 촛대봉의 바위로 변한 사실도 모르고 헤메인다.
결국, 그리움에 지쳐 호야가 바위로 변한 자리가 영신봉.
....................................................................................
바위로 변해 영원히 마주보며 만날 수 없게 된.. 두 연인.
촛대봉과 영신봉은 세석평전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봉우리.
넓은 세석평전 은밀한 곳에 옛부터 전해져 온 '음양샘의 전설.'
오늘날까지 아이 낳기를 염원하는 여성들
영신봉 자락 세석평전까지 찾아오는 음양수.
음양수는 오랜 세월간 대성골을 빚어낸 발원지.
'과연 그 샘물을 마시면 효험이 있긴 있는걸까?'
오랜 세월을 전해내려온 전설에 깃든 역사.
그 숨은 역사가 없다면 전설의 가치는 없다.
하여, 전설은 그 배경 역사 만큼 가치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유서 깊은 <음양수 전설>.
<음양수 전설>은 지리산의 하이 라이트.
<음양수 전설>은 <촛대봉의 전설>과 유사.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5 가지의 차이점.
첫째. 두 연인의 보금자리가 대성골 아닌 세석평전인 점.
둘째. 영신이 바위가 되어버린 사실을 호야가 몰랐던 점.
셋재. 호야가 영신을 찾아 헤메이다가 지쳐 죽어버린 점.
넷째. 호야가 죽은 자리에서 솟아오른 바위가 영신봉인 점.
다섯째. 세석을 마주보는 두 봉우리를 연인에게 비유한 점.
...................................................................
...................................................................
'음양수 전설'에는 납득하기 힘든 의문점이 있다.
하여,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많은 상상력을 갖게 한다.
'음양수 전설'에 관한 의문점은 대략 6가지로 요약된다.
1. 샘물을 몰래 마신 영신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형벌인 점.
2. 낮에는 철쭉이 빨갛게 물들도록 가꾸고 밤에는 속죄한 점.
3. 영신은 촛대봉에서 속죄하다가 죽고 호야도 바위로 변한 점.
4. 영신은 촛대봉..호야는 마주 보이는 영신봉에서 돌로 변한 점.
5. 호야가 죽은 곳 지명을 '호야'가 아닌.. 영신봉이라고 부르는 점.
6. 영신과 호야가 그곳에 살았다지만, 음양수 위치를 몰랐다는 점.
'원래, 전설은 베일 속 신비가 더 아름다운지 모르지만..'
베일 속 신비를 파헤치고픈 충동을 감출 수 없는 궁금증.
자신도 모르게 '음양수 전설'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된다.
'혹시라도 영신은 '산신령 애첩'이 아니었을까? '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억측에 가까운 가정도 해 보자.
영신과 호야는 산신령도 모르게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
반달곰은 영신과 호야의 관계를 산신령에게 숨긴 존재.
호랑이는 두 연인 관계를 산신령에게 고해 바친 존재.
하여, 산신령은 곰의 괴쌤죄를 물어 토굴에 가두었다.
한편, 호랑이에게는 '백수의 왕' 칭호를 내린 산신령.
해마다 봄이면 철쭉꽃으로 뒤덮이는 세석평전.
처녀의 피빛 투명한 속살같이 아름다운 철쭉꽃.
영신이 호야를 죽도록 사랑했던 피 같은 그리움.
베일 속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간직한 음양샘.
'죽어도 말 못할 여인의 비밀'이 담겨져 있는 듯.
결국, 영신을 찾아나선 호야도 산신령으로부터 형벌.
산신령의 분노로 호야가 돌로 변해 죽은 곳이 영신봉.
서로 사랑하는 사이면서도, 말못할 사연을 간직한 듯.
영신은 죽는 순간까지 산신령에게 참회의 기도를 올린 점.
영신은 호야를 살리려고 '산신령이 내린 형벌'을 감수한 듯.
두 연인의 비련이 담긴 음양수 전설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혹시, 음양수는 가락국의 상징 아닐까?'
음양수는 영신대 아래 위치
영신봉은 낙남정맥의 시발점.
낙남정맥은 가락국의 옛 영역.
가락국은 호랑이를 토탬으로 여기는 나라.
곰을 토탬으로 여기는 고조선과는 적대관계.
양왕이 된후 국골에 살았다는 가락국의 구형왕.
신라와 가락국이 평화 합병 이후에
왕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기에 양왕.
양왕이 된 구형왕은 옛 가락국 영역을 통치.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골 추성산성은 백제와 전쟁 당시의 격전지.
'국골 바로 옆에 있는 계곡이 칠선계곡.'
칠선계곡은 '선녀탕 전설 속 7선녀에서 유래된 지명.
칠선계곡의 7선녀는 '구형왕의 여자'일 가능성이 있다.
칠선계곡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있는 세석평전.
'음양수 전설' 속.. 영신.
혹시, 구형왕의 여자였을까?
영신과 호야가 대성골에 살았다면,
칠선계곡으로부터 사랑의 도피행각(?)
너무 가까운 거리라 그럴 가능성이 희박.
음양수 전설 속 영신과 호야는 어떤 신분일까?
아이를 갖일 수 없었다면, 궁녀와 내시였을까?
아니면, 영신은 신라 화랑을 이끈 원화였을까?
이조 때 궁녀일 가능성도 한번 가정해보자.
전설 속 두 연인은 대성골에 살았다고 한다.
한반도 역사상 법도가 가장 엄했던 이조시대.
국법을 어긴 중죄인은 삼족을 멸하거나 죽도록 귀양살이.
이조 국법은 목숨걸고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릴 만큼 지엄.
고려 및 이조시대 은둔자들은 속세를 떠나 지리산에서 은둔.
그 누구도 찾지 못할 곳으로 숨어 유배 형벌을 모면했다.
하여, 이조는 '반역의 산.' 지리산을 전라도에 귀속했다.
한편, 지리산은 이조 시대 이상향으로 불리우기도 했던 곳.
남녀가 평등할 수 있는 이상향.
전란과 형벌을 잊고 살만한 곳.
양반 상민 신분 구분이 없는 곳.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고민하는 연인들
예나 지금이나 지리산은 '사랑의 도피처.'
특히, 대성골 일대는 사랑의 도피처 명소.
........................................................
.........................................................
이조시대 궁녀는 궁을 떠나도 결혼을 못하는 신분.
순결한 처녀라도 왕과 혼례를 치룬 '왕의 여자'인 탓.
이조시대 궁녀들은 한 방에 2명 씩 거주하며 궁궐 생활.
상궁은 정 5 품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신분.
그러나, 외로움을 견디지못해 동성애가 성행.
궁녀가 성욕을 해소할 방법은 오직 동성애 뿐.
외로움 달래려 담배도 많이 피웠던 궁녀.
정 5 품이면, 어지간한 고을 원님과 동격.
춘향에게 숙청을 강요한 남원 원님도 정5품.
정 5 품 신분이라도 숙청들 관비가 많았던 원님.
궁녀는 왕의 성은을 받지 못하면 평생 처녀의 몸.
법도를 어기고 외간 남자와 살을 섞은 궁녀는 죽음.
'임금 말고는 사랑에 빠질 수 없었던 궁녀.'
궁녀가 사랑을 이룰만한 곳은 오직, 지리산.
사랑에 빠진 궁녀가 목숨 부지할 만한 도피처.
지금부터 이조시대 궁궐 법도에 관해 알아보자.
출처:와룡산사랑 글쓴이:선경나라
출처 : 무지개산악회카페
글쓴이 : 뭉게구름 원글보기
메모 :